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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총기(銃器)

얼마 전 일본의 아베 전 총리가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총으로 암살을 당하여 전 일본 열도와 세계는 총기에 대한 지탄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자민당은 이 암살로 동정표를 받아 참의원 선거에 승리해 군대를 가질 수 있는 헌법 개정의 문을 활짝 열어 동북아시아의 지진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일본이 정식으로 공격권을 가진 군대를 가진다면, 한국은 마뜩지 않지만 무어라 말은 못 할 것이고, 북한은 너 잘 만났다고 기승을 부릴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누구 말마따나 이쯤 되면 막 나가자는 거냐며 연일 과거 일본 제국주의가 돌아왔다고 거품을 물 것이다. 그러나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일본의 역할을 강조하는 미국은 한국에서 미군 철수라는 빌미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미국은 정말 총기 때문에 어지러운 상황이다. 일 년에 몇 백 건씩 사고가 나는 것은 식상하고 이제는 아예 독립기념일 날 축하 퍼레이드에도 총을 난사하기도 한다. 시시한 좀도둑 같은 총질은 아예 신문에 나오지도 않으며 보통 총기 난사쯤은 되어야 지면을 차지한다. 더욱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이제는 학교에서 수십 명씩 사망하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미국은 헌법에 총을 소유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 광활한 천지에 총으로 독립을 하였으니 그럴만하다. 많은 주는 21세 이상이면 동네 마트보다 더 많은 판매점에서 자유롭게 총기를 살 수 있다. 미국에서 민간인 총기 소유는 2억 7천만 정으로 3억 3천만명 인구에 비례하면 성인은 모두 1자루 이상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총기 문화’라고 문화라는 단어의 경지까지로 발전하였다. 일상생활용품이라는 뜻이다. 하긴 집안에서 총기가 굴러다니다가 얼마 전에는 네 살배기 아기가 오발로 아버지를 죽인 끔찍한 일까지 벌어졌다. 한 수 더 나아가 텍사스주와 조지아주는 아예 아무나 총을 구매할 수 있다고 오래 전에 주정부 법을 개정하였다. 담배를 사려면 신분증을 보여야 하는데 여기는 담배 한 갑 사는 것보다 쉬워졌다.   최근 모든 연령대에서 총기로 인한 사망자는 4만 5천명 이상을 차지한다. 미국인의 총은 매년 군대 사단 병력에 달하는 인원을 미국 안에서 죽이는 셈이다. 물론 여기에는 자살자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총이 없는 한국의 자살자 수가 미국보다 훨씬 상회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꼭 총기 규제를 한다고 해도 큰 효과는 없다는 것이 미국의 또 하나의 고민이다.   이런 자살이든 어떤 미친놈의 총기 난사든 이를 규제하려면 정신 감정부터 강화하여야 하는데 이는 결국 의료 보험과 상충되어 문제가 복잡하다. 한국이 의료 보험에 천국이라면 미국의 의료 보험은 지옥 그 자체다. 한국은 애당초 박정희가 보험회사를 눌러 버리고 국가 공공사업 성격으로 출발시킨 반면 미국은 보험회사가 이를 좌지우지한다. 이를 부러워한 오바마가 ‘오바마 케어’라는 한국식 보험 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이익이 엄청 걸린 보험 협회의 강력한 로비로 현재 이 제도는 흐지부지되고 있다. 여기에 총기 협회의 로비로 미국은 총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나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하곤 하는데 미국의 “땡큐” 문화와 일본의 “스미마셍” 문화는 미국은 과거 무질서한 식민지 전쟁 때에, 일본은 사무라이 시대에 기인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은 반대로 이러한 감사와 미안하다는 문화는 별로 없이 그저 덤덤하게 “알았어” 하나로 잘도 통해 나간다.   그러한 문화는 공포로 인한 자연 발생적 상황에서 발생하지 않았나 뜬금없이 생각이 된다. 그것도 하도 철저히 지켜 이제는 나까지 자다가 “땡큐”를 할 지경이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총기 총기 문화 총기 협회 총기 문제

2022-07-14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0.75

아마 연세가 많으신 분들은 존 스타인벡(John Ernst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라는 소설과 영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1930년대에 나온 명작으로 당시 미국에서 대공황을 맞아 농가가 파괴되는 현상을 소설화하였다. “에덴의 동쪽”을 발표하기도 한 그의 소설은 자본주의를 고발하는 내용이지만 그렇다고 프롤레타리아 소설은 아니다. “분노의 포도”에는 경제 대공황을 맞아 농장 주인이 빚을 져 은행에 땅이 넘어가고, 나중에는 파산에 처한 은행마저도 어쩔 수 없어 트랙터 등을 이용해 소작농을 몰아내 일가족이 처한 고통을 그렸다.   요즘 “0.75”라는 새로운 숫자가 등장하였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뽑을 때 지방이 2% 모자란 스킴 밀크(Skim Milk)를 사용하면서 "2% 모자란다"라는 말이 유행하였듯 이제는 “자이언트 스텝”인 기준 금리 인상 “0.75%”가 유행어로 등장하였다.   “2%”가 애교 있는 뜻이 묻어 있다면 “0.75”는 공포의 숫자다. 지난달에 이어 계속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를 그렇게나 대폭 심심하면 올리겠다니 다행히 인플레이션이 잡히면 좋지만 안 잡힐 때는 소위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으로 직행한다.   이 정도는 애초 Covid19가 왔을 적에 예상되었으나 문제는 우크라이나 장기 전쟁이 느닷없이 덮쳐 금리 인상으로는 더 어쩔 수 없는 대공황이 온다면 문제다.   1930년대의 2차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때는 은행이고 금본위제고 전부 폐쇄시켜 아직도 그의 기념관에는 노숙자들이 급식소에 줄을 서 있는 동상이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이때 어려서 농촌에 살면서 들쥐를 하도 잡아먹어 대통령 당시 아직도 입맛이 살아 있다는 끔찍한 이야기를 여담 삼아 하기도 하였다. 히틀러도 이 당시 독일 국민이 대공황에 시달리다 못해 새로운 인물로 등장시킨 인물이다. 소위 먹고 살기 위한 문제는 세계 평화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행정, 사법 고시를 모두 합격한 동아대학교 법학 전문대학원 송희식 교수에 의하면 대공황이 온다면 49가지 대처 방법을 처방하였는데, 그러나 이것도 코로나가 한창일 때의 지난 이야기이고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가 터진 마당이라면 그는 더욱 펄펄 뛰셨을 것 같다. 처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황이 곧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장기간 생활 수준을 낮춰라” “가족 간에 유대를 강화해라”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대부분 현금화 하라” “국가와 정부에 기대하지 말라. 국가는 당신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한다” “신문이나 언론을 믿지 마라” “부동산에 투자하지 말고 주식에 열을 올리지 마라” “달러를 저축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은행이 안전하다고 믿지 말라. 예금을 몽땅 날릴 수도 있고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몇 달씩 묶일 수 있다” “장기적으로 생각하라. 불황에는 당장 되는 일이 없다” “금이나 귀금속을 보유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유 있는 사람이라면 이웃을 챙겨라” “집은 구하기보다 임대를 하라” “주식 시장에서 장기 투자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투자를 하고 싶다면 정말 바닥권을 찾아 장기적으로 기대하는 것도 좋다” “돈이 많다면 미리 유언을 작성하라” 설마 이렇게 되랴, 속 좁은 생각을 해 봤지만 그렇다고 몰라라 할 필요도 없고 그냥 한번 미리 알아 두는 것도 좋을 듯하여 대충 기록하여 보았다. 오늘 유가와 주식을 보면 너무 혼돈해 국채에 몰리는 현상이 있으나, 오히려 유가가 내려가는 것이 경제 활동이 없어 그러하다니 더욱 으스스 한 이야기다. 올라가도 걱정, 내려가도 걱정,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 같은 서민에게는 죽을 맛이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경제 대공황 우크라이나 장기 장기 투자

2022-07-08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사우디 회고기- 홍해를 걷다(1)

박정희가 시해를 당하고 5•18 사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난 그 즈음 뜨거운 열사의 햇살을 받으며 서부 해안 홍해가 있는 바다로 달렸다. 100톤 크레인의 기어가 고장 나 리야드 시내의 ‘세운 상가’라 불리는 온 부품 상가를 다 뒤졌으나 구할 수가 없었다. 급한 대로 전 현장들을 수소문하니 다행히 서해안 제다 현장에서 부품이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이른 아침 그쪽 현장에서 필요하다는 우리 부품 몇 개를 주워 담고 950Km 떨어진 서쪽 홍해 바다를 향해 정비 주임과 둘이 달렸다.     출발한 지 1시간가량 지나니 이웃 현장에서 한창 고속도로를 뚫느라 발파가 요란하다. 주먹만 한 조개로 뒤덮인 화석지대다. 산 가운데를 대충 절벽으로 자른 임시 길에서 올려다보니 마치 어느 예술가가 거대한 벽에 수억개의 대합조개를 조각해놓은 것 같다. 이제부터는 지루한 여정이 시작된다.   9시간을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을 달려야 한다. 중간중간 시커먼 돌 산맥이 옆으로 따라 오기는 하나 우리 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도로는 어렸을 적 눈에 익은 중간선도 없는 다 삭은 왕복 편도 길이다. 반대편 동쪽으로 가는 길은 수많은 건설 현장들의 중장비들이 서로 엉켜 다니느라 좁은 도로는 매일 사고로 아수라장이다. 벨트 모양 동서로 대륙을 일자로 잇는 길은 이 길이 유일하다. 다행히 오늘 가는 중부 리야드 수도에서 서해안으로 가는 길에는 도시도 없고 건설 현장도 없다.   무료하게 몇 시간을 달리니 거대한 호수가 나온다. 신기루다. 거리가 일정하니 호수를 밀며 나간다. 개중에는 물결까지 일렁이는 호수가 있는데 가끔 마주 오는 차가 물속에서 튀어나온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피로가 늘 누적되어 말이 없다. 그리고 할 이야기도 없다. 둘이 졸리기 시작해 핸들을 번갈아 잡는데 드디어 말로만 듣던 손님이 나타났다.     사우디 현지 주민이 갑자기 나타나 바짝 옆구리에 붙이며 싱긋 웃으면서 손짓을 한다. 한바탕 붙자는 거다. 서로 심심하던 차에 관례적인 예의상 응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서로 기어를 1단으로 줄여 같이 힘차게 튀어 나가면 된다.   그 사람은 건설 현장의, 그것도 중기 공장의 매일 기름 칠하는 장거리 출장차를 잘못 골랐다. 다 같은 GMC Pick Up이나 우리는 더 긴 4 Door 트럭에다 짐 싣는 바닥에 10mm 짜리 두껍고 넓은 철판을 깔아 달릴수록 안정하다. 게다가 이번 길은 사막 모래 안으로 들어갈 일이 없어 4륜 구동에서 전륜 구동을 떼어내 더욱 잘 달릴 수 있게 만들었다. 기름이야 먹건 말건 사우디에서는 물값이다. 워낙 양쪽으로 오가는 차가 없으니 엎치락뒤치락 한참을 즐겼다. 그 친구는 나의 현장 근처에서도 볼 수 있는 보따리 장사꾼 같은데 간간이 길가에 몇 채씩 주저앉아 사는 집들과 사막 안에 유목민을 찾아 재미를 보는 보부상이다. 어느 때는 기다란 수박을 실은 차를 보고 얼음 없이도 맛이 있을까 괜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서로 기분 좋은 손짓으로 헤어지고 긴 긴 한나절을 달리니 처음으로 타이프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타이프는 지금 국제공항이 있는 대도시로 변했다). 이쯤 왔으면 3시간만 더 가면 도착이다. 기름을 채우고, 통닭 튀김을 허수룩한 식당에서 눈총을 맞아가며 늦은 점심으로 떼웠다. 이 통닭 튀김은 국제적인 메뉴인 모양이다. 안 튀기는 국가가 없다. 손가락 사용도 역시 국제 통합이다.     이제부터는 이 마을 뒤편에 있는 거대한 산을 넘어야 한다. 절벽이 하늘까지 치솟아 버티면서 네가 한번 넘어 보라는 자세다. 평지에 이골이 나 오랜만에 낭떠러지 길을 달리니 반갑기 짝이 없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아래를 내려다보니…〈다음주 계속〉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사우디 회고 사우디 현지 서쪽 홍해 부품 상가

2022-06-23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아버지와 노예 해방

올해 6월 19일은 “아버지의 날”과 “노예 해방의 날”로 겹경사인 날이다. 아버지의 날이야 1972년 닉슨 대통령이 정식으로 6월 셋째 일요일을 국가 공휴일로 제정해 오래된 역사가 있지만, 노예 해방의 날은 많은 주에서는 자체적으로 그동안 오랫동안 지켜온 반면 일리노이 주에서는 다소 생소한 날이다. 연방 공휴일로 제정된 것은 작년에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후 6월 17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는 작년도에 첫 공휴일인 토요일이 금요일로 대체되었다지만 기억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가 극심한 시기로 직장과 상가가 모두 문을 닫고 숨죽이며 살 때라 인생의 맛이 갔을 때였다. 살기 바쁠 때에는 그냥 엎드려 죽는 게 부활이다.   이날은 텍사스 주의 흑인 노예 해방 기념일인 6월 19일 “준틴스”(Juneteenth)가 기원이다.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합쳐 “준틴스”라 불리는 이날은 156년 전 텍사스에 있던 마지막 흑인 노예가 해방된 날이다. Juneteenth는 흔히 합성어로 비문법적이라고 여겨지는 “Black English”(흑인 영어)에 해당하는 단어지만 그대로 굳어져 이제는 공식 명칭이 되었다. Day고 뭐고 그냥 빼버리고 그냥 흑인이 편하게 부르는 날로 정해졌다.     따라서 미국인은 독립기념일을 7월 4일로 기억하지만 많은 흑인은 그들의 독립기념일을 6월 19일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미국식답다. 유럽 아니 한국 같으면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6월 19일은 남북 전쟁 당시 북군 소장인 고든 그레인저가 1865년 이날 군대를 이끌고 텍사스주 갤버스턴에 도착해서 링컨이 이미 1863년에 노예제를 폐지했다는 소식을 전한 날이다.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를 선포한 바람에 노예제 폐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던 농장주들도 더는 버틸 수 없었다고 한다. 텍사스주의 흑인들이 노예 해방이 선언된 1월 1일이 아닌 6월 19일을 기념하게 된 기원이다.   그러나 남북 전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설에 따르면 링컨 대통령의 목적은 서부로의 계속적인 영토 확장에 있었으며 그 지역에는 노예를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였다. 노예제도는 궁극적으로 미국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북부인들의 생각에 새롭게 확장되는 영토에서도 노예가 허용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부 주들은 각자 주가 소유한 노예에 대해 그건 자기네들이 알아서 차차 정치적, 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자 노예를 해방해야 할 도덕적 명분 외에도 실질적인 이유가 생겼다. 남부인들이 자신들이 부리는 노예를 전쟁에 동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링컨은 전쟁 발발 이듬해인 1862년에 1차 경고를 한다. “반란을 멈추지 않으면 내년(1863) 1월 1일을 기점으로 노예를 해방하겠다”라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의 강대국들에 대통령제라는 과격한 민주주의를 실행에 옮긴 미국은 경계의 대상이었다. 미국의 급진적인 제도가 유럽에 퍼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은근히 원하는 결과였다. 하지만 링컨이 노예 해방을 선언하자 이 전쟁은 명목적으로도 노예 해방 전쟁으로 바뀌었고, 그렇게까지 선언했는데 남군을 도우려는 유럽 국가들이 있다면 그 나라들은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게 된다. 그럴 경우 미국 남부의 독립을 돕기 위한 파병은 국내적으로도 큰 정치적인 부담이기 때문에 결국 남군 원조를 포기하였다.   하여튼 이날 아버지와 노예 해방이라는 단어는 나 같은 늙은이에게는 어쩐지 연계성이 느껴져 더욱 기쁘기 짝이 없는 날이다.(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아버지 노예 노예 해방 노예제 폐지 이날 아버지

2022-06-16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선물과 카드

선물은 원래 인간관계를 풍족하게 해준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즐거움을 느끼게 하고 고마움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선물이 크거나 비쌀수록 좋기는 하겠으나 받는 사람이 정도를 지나쳤다고 생각하면 고마움보다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가족이나 친지, 친구 관계가 아닌 경우에는 거부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선물은 사회적 관계라기보다는 가족적인 성격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카드는 선물과는 달리 전혀 구애를 받지 않고 아무데서나 소통이 잘 돼 미국에서는 카드 교환이 중요한 일상 생활의 하나로 일찍이 자리를 잡았다. 더구나 감사 문화가 대표적인 미국에서는 카드만큼 중요한 구실을 하는 게 없다.   크게 개의치 않을 일에도 아무에게나 심심하면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는 미국인들의 습성으로 카드는 입으로 하는 구호를 지나 손으로도 전달해야 만하는 중독성 물질이 되었다. 그걸 통해서 새로운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기도 하고, 틀어진 사이였으면 오해를 불식시켜 다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카드를 제일 먼저 주고 받는 것은 아무래도 가족이다. 아이들이 부모와 걸핏하면 카드를 내미는 것은 기대 충족감과 더불어 상대방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다.     미국은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부모와는 영원히 이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카드 산업이 엄청나다. 재미있는 것은 어른들은 종이 카드를, 자녀들은 인터넷 카드를 주로 이용하는데 서로가 바꿔서 받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아무래도 어른들은 손에 무언가 잡혀야 실감 나고, 자녀들은 우체통에 넣는 번거로움보다 컴퓨터 클릭 한 번에 간편하고 음악도 나오는 것을 좋아한다.   이러니 가족 말고 친척, 친구까지 필수적으로 챙겨 줘야 하고, 주위의 아는 사람들까지 챙기려니 카드 노이로제에 걸릴 만한데 여기서는 일상사가 되었다. 특히 연말 가까이 되면 미국 전체는 선물과 카드로 대 전쟁을 치른다. 11월 넷째 목요일 추수감사절과 12월에 성탄절이 있어 한 달간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인데, 특히 자녀들은 시집 장가를 갔어도 성탄절에는 대부분 부모 집을 찾아오는 게 불문율이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귀성 비행기를 오래 전에 예약을 하여야만 하고 때로는 비행기가 날씨 관계로 결항이라도 되면 공항 안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다반사다.   미국의 가정은 대부분 추수감사절이 바로 끝나는 11월 말부터 한 달간 앞마당은 물론이고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이 일반화 되어 있다. 진짜 나무든 가짜 나무든 그 나무 밑에는 친척을 포함해 각자 사 온 선물을 며칠 전부터 수북이 쌓아 놓고 성탄절 늦은 아점을 든 후 다들 모여 바로 뜯기 시작한다. 선물에는 카드가 붙어 있기 마련인데 이때 이걸 읽고 한번 껴안아보고, 선물 뜯으며 또 한번 껴안는다. 일년 내 못다 한 애정을 만끽하는 순간이다. 개중에는 큰 것이 있어 좋아라고 뜯어보면 솜으로 만든 큰 인형이 있지를 않나, 작년에는 나 같은 경우 쓰레기통이 들어있는 황당함도 겪어 보았다. 집안 쓰레기통을 십 년을 썼더니 아주 부실해져 갈아야 될 때라고 모의를 한 모양이었다. 집안 견공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개 모자, 개 목도리, 개 장갑까지 등장한다. 견공 나리까지 이렇게 같이 덩달아 난리를 치다 보면 이른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된다.   미국에서 이상한 점은 밸런타인데이는 친구끼리도 카드를 주고받기는 하지만 부모 자녀 간에 교환이 그보다 더 많다는 것이다. 아마 무슨 특정한 날이라는 개념 없이 무조건 줘서 나쁜 게 없다는 식인 모양이다. 하여튼 카드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카드 가는데 꽃이 따라 가면 더욱 값져 보이기도 한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선물 카드 카드 교환 카드 노이로제 인터넷 카드

2022-06-09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체취 문화(體臭 文化)

이민을 가게 되면 대체적으로 처음 만나는 문화 충돌은 언어, 음식, 풍습이며 아마 체취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으나 아직도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 차이를 꼽으라면 자기 몸에서 나는 체취에 대한 차이 일 것이다. 특히 남성은 아직도 이 분야에서 절대적인 차이점을 느끼곤 한다. 많은 동양인들이 미국에 와서 한번씩 겪었을 첫번째 말 못 할 황당함이란 아마 영어 소통도 있겠지만 자신도 생각 못 했던 몸에서 나는 냄새에 관한 추억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 미국에 사는 사람들도 냄새가 없다는 게 아니라 몸 관리가 소홀한 편인 동양인들에게는 냄새가 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즉 샤워와 향수 문화가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서 오는 유학생들에게 하는 첫 마디가 샤워에 관한 것이다. 한국과 달리 여기는 세수라는 단어가 없고 대신 샤워라는 단어만 있으니 샤워가 끝난 후 남자이건 여자이건 가급적 옅은 향수라도 반드시 뿌리라는 주문이다. 이것은 매일 아침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행사하는 이곳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다. 아니 아예 화장실 가운데에는 얼굴이 아니라 큰 모양의 손 닦는데만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곳 사람들은 매일 옷을 갈아입는다. 심한 사람은 신발도 자주 갈아 신는다. 갈아입는 옷의 기준은 속옷부터 겉옷까지 몸에 걸치는 것 백프로 전부다. 즉 양말, 내의부터 어제 입었던 옷이면 무조건 세탁소 행이다. 겉에 입는 양복까지 매일 갈아입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미국은 양복 문화보다 캐주얼 문화가 발달됐다. 양복을 입는 사람이 미국인 전체의 1%라면 과언일지 모르겠다. 하여튼 공무원으로 말하면 국장급, 대기업이나 은행은 임원급, 방송국은 화면에 나오는 앵커들, 그런 식이다. 그나마 금요일은 캐주얼 데이라 해서 사장부터 전 직원이 잠바떼기인 회사가 많다. 그러니 파티가 아닌 이상 젊은이들이 낮에 양복을 입고 돌아다니거나, 여성들이 화려한 정장을 한 모습은 가뭄에 콩나기다.   교포들이 거의 차지하고 있는 세탁소도 한국에 비하면 엄청 일거리가 많다. 그러나 동전을 집어넣고 세탁기를 돌리는 소위 빨래방이라는 데는 주말만 되면 며칠된 빨래를 산더미같이 들고 줄을 서있는 젊은이들이 기계 속으로 집어던지는데 다음 주에 새로 입을 속옷도 있지만 이부자리도 많이 눈에 띈다. 그나마 요즘 시카고에서는 소위 창고 형태의 대형 세탁 공장이 프랜차이즈 형태로 동네마다 생겨 값싸게 처리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우르르 몰린다. 대기업의 횡포로 죽어 나가는 건 교포들 세탁소지만 그만큼 세탁 문화가 여기는 식문화만큼 중요하다. 아마 대형 식품 마트와 세탁소는 인플레 경기와는 관계없이 불황을 안탈 것만 같다.   과거 유학을 온 많은 지인의 자녀들에게 샤워 문화에 대해 설명을 해줬더니 그런 저런 잘 지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차 얼마 후 부모가 마침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 이에 대한 설명을 잘 해달라고 주로 딸들이 부탁해 거두절미하고 아이 옷 좀 많이 사주고 가라고 했더니 아이 행색이 초라해서 그러냐고 해 다 같이 웃은 적이 있다. 덕분에 그 딸내미는 캐주얼 옷이 엄청 늘어나, 나만 보면 아저씨 최고란 소리가 연발이다. 아마 그 부모는 집안에서도 화장실 갈 때마다 손을 닦고 나오는 아이를 보고는 갑자기 결벽증에 걸린 게 아닌가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우선 아침을 여는 생활 습관부터 이렇게 다르니 나머지 하루 종일 하는 일과 잠자리 들기까지의 습관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문화란 세계 나라마다 각 가정마다 이렇게 작은 일이나마 아침을 어떻게 여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체취 문화 샤워 문화 캐주얼 문화 양복 문화

2022-06-02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Memorial Day

매년 5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미국 현충일(Memorial Day)이다. 1866년 5월 5일 뉴욕 주에서 비슷한 행사를 열었던 것이 계기가 돼 1868년 5월 30일 남북전쟁의 희생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서 지정됐다. 전사한 미군 장병의 묘지에 헌화한다는 의미에서 데코레이션 데이(Decoration Day)라고 불렀었다. 1882년 Memorial Day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1차 대전 이후 전쟁에서 사망한 모든 장병들을 기리기 위한 날로 바뀌었다고 한다. 1968년 연방 공휴일로 격상되어 50개 모든 주에서 휴일로 쉴 수 있게 됨과 동시에 법적으로 대체 휴일 제도가 도입되면서 1971년부터는 5월 30일에서 현재의 마지막 주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메모리얼 데이에는 미국 각지에서 기념 행사가 열리는데, 이 중에는 기념 퍼레이드도 열린다. 시카고는 한국에서 군복무를 하였던 시카고 재향군인회가 매년 참석하는데, 오전 10시경 시카고 오페라 극장에서부터 출발하는 퍼레이드의 선두그룹에 나선다. 한인들의 농악과 태권도는 미국인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이곳의 “한국전 참전 재향군인회”와 연이어 같이 행진을 하여 더욱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 출신의 한국전 참전 재향군인회의 활동은 11월 ‘미국 재향군인회의 날’을 맞이 하면 시장이 축사를 할 정도로 정치적으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날은 도심에서만 퍼레이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 도시에서는 도로에 온통 작은 성조기와 하얀 십자가를 끝간 데 없이 꽂아 놓는다. 십자가에는 그 지역 출신으로 전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10년 전, 우연히 재향군인회 홍보 이사가 되어 거리에서 사진 촬영과 유투브 동영상을 만들어 홍보하기도 하였다. 자연히 한국의 6월 6일 현충일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시카고 재향 군인회는 한국 재향 군인회의 지원과 관심이 많아 지역 사회에서의 활동이 대단하다. 내가 당시 홍보이사가 된 계기는 고려대학교 ROTC 1기로 대장으로 퇴역한 박세환 장군이 국회의원을 역임한 후 마침 한국의 재향 군인회장이 되어 시카고에 왔을 때였다. 당시 ROTC 2기로 시카고에서 활동하던 김진규씨가 시카고 재향군인회장이 됐는데 과거 내가 한국 ROTC 신문에 기고한 것을 빌미로 부탁을 받았다. 두 분은 한국과 시카고에서 같이 연임을 하여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며 많은 활동을 하던 시기였다.   미국에서의 퍼레이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승전 기년일’처럼 대단한 군사 퍼레이드는 안 한다. 주로 각 주에서 민간인 주도로 진행하며 주 방위군이 보조하는 정도다. 연휴가 끼어 축제의 의미도 있다. 한국처럼 엄숙한 분위기보다는 계절이 여름 철로 들어가고 각급 학교가 6월에 끝나 많은 시민들이 고향을 찾거나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메모리얼 데이는 메이저리그 시즌이 한창 때여서 각 구단은 선수단 유니폼 상의와 모자에 디지털 전투복 무늬를 첨가한 밀리터리 유니폼을 제작해서 입고 나온다.     퍼레이드에 참석했을 때 본부석에 앉아 있는 머리가 하얀 재향 군인 노부부의 이야기를 뒤에서 우연히 듣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신이 장진호 전투에서 살아 돌아 오지 않았으면 오늘 이 자리는 없었을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편지를 정기적으로 보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편지가 제대로 오지 못 했는지 나중에 알았다. 당신이 참전한 한국이 오늘날 눈부시게 발전한 것을 보면 자랑스럽다”. 나는 그분들이 서로 오랫동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후 크게 인화, 고급 액자에 넣어 보내주는 것으로 답례를 할 수밖에 없었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memorial day 시카고 재향군인회장 재향군인회 홍보 memorial day

2022-05-26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청록파(靑鹿派)

요즘 젊은 분들 가운데 ‘청록파’ 시인에 대해 아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청록파 시인은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사람을 일컫는다. 이 세분은 일제의 한글 말살 정책에 항거하며 틈틈이 써온 시를 정지용의 추천으로 광복 직후인 1946년에 제목을 ‘청록집(靑鹿集)’으로 ‘문장’지를 통해 발표를 하였다. 시집의 이름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왔다. 향토적 서정을 노래한 박목월의 시, 민족 정서와 전통에의 향수를 담은 조지훈의 시, 시대적 고난과 절망을 불멸의 생명력으로 초극하려 한 박두진의 시, 이들의 시는 각기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운데 자연의 새로운 발견을 소재로 삼았다.   청록집은 같은 출판사 을유문화사에서 근 60년이 지난 20년 전에 제 2판이 나왔다. 나는 시카고에서 오래 전 우연히 이 시집을 발견하고 감격하였다. 시카고의 유일한 서점이 문을 닫느라 재고 정리를 하던 중 많은 책을 뒤적이다 2판으로 나온 이 책을 구입하였다. 무엇보다 감격한 것은 멀리 미국에서 이러한 시집이 있었다는 것과 이곳 교민들의 문화 의식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다.   책은 1판과 함께 엮어 같이 출간하였는데 당시 1판의 고색 창연한 종이에다 가로가 아닌 세로로 나열한 시들이 더욱 정감 있게 하였다. 세분을 모두 합친 시 36편으로 비교적 얇은 시집이나 그 무게는 감당을 못할 정도로 다가 왔다.     이 청록집은 우리의 젊은 시절과 그전의 세대에 시대를 풍미하던 시들이다. 특히 박목월의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로 시작하는 ‘나그네’와 박두진의 “북망이래도 금잔디 기름진데 동그만 무덤들 외롭지 않어이”로 시작하는 ‘묘지송’(墓地頌)은 당시 우리들이 입에 달며 무교동의 청녹 다방과 명동의 학사 주점에서 독재에 항거하며 고독을 달래던 주제이다.   고려대학교에서 “청록파 시의 대비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김기중 교수는 이 시집은 해방 직후 목적의식을 앞세운 좌익 시단에 맞서 젊은 우익들이 펴낸 첫 작품집이라는 점과 해방 이전의 순수시와 전후 전통 서정시를 잇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냈다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조지훈 시인은 나의 학창 시절 은사이기도 하다. 그는 굵은 테 안경에 과묵하고 명강의로도 유명하였으며 그의 커다란 시비(詩碑)는 현재 고려대학교 상징으로 학생들이 잘 보이는 대 운동장 한곁에 있다. 그는 고려대학교 응원가를 작사하기도 하여 고연전에 선창으로 학생들의 민족 정신 고양에 힘찬 기개를 느끼게 하였다. 그는 고대 신문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하였으며, 조지훈 교수를 모시며 고대 신문 초대 편집국장으로 명필을 날렸던 이태영씨는 나의 선배로 일찍이 미국으로 유학을 와 시카고에서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기도 하였다. 이태영씨는 아직도 젊은 현직 고대 신문의 후배들이 찾아와 인사를 나누기도 하는데, 그는 Metropolitan Bank에서 부사장을 역임하다 은퇴 후 자식들이 있는 시애틀에서 거주하며 현재 자서전과 워싱톤주 보수주의 연구소에 논문을 집필하고 있다.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조지훈의 시를 소개한다.   봉황수(鳳凰愁) :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 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 위엔 여의주 희롱하는 쌍룡 대신에 두마리 봉황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품석 옆에서 정일품正一品 종구품從九品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에 호곡하리라.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청록파 청녹파 청록파 시인 박목월 조지훈 조지훈 시인

2022-05-19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어느 청년의 진로 고민

오늘은 페북을 읽다 우연히 흥미로운 글을 보아 여기 소개한다.   "저는 27살 남자인데 미국에 12살에 왔으며 고등학교와 대학을 미국에서 졸업하였다. 그동안 몇 개의 직장을 가졌지만 영어가 아직 서툴러 직장 사람들과 어울리는데 문제가 있으며, 직장 생활도 그리 탐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고정된 직업을 가지며 앞날을 설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그러던 차 한국에서 식당을 하는 친척이 일식집으로 성공을 하였는데 들어와서 기술을 익혀 미국에서 장사를 하면 더 좋을 것이라는 의견을 보내왔다. 원래 Chef라는 직업에 관심이 많아 고민 중이다.”   이에 미국 교민들의 댓글은 엄청나게 많은데 지면상 몇 분들의 것만 줄여 소개한다.   -그 정도 영어 하면 Amazon에서 일할 수 있답니다. 스시 셰프요? 저는 그 기술 찬성 못하겠네요. 미국에 왔으니 미국 회사에서 일하는 게 더 진보적이라 생각해요 또는 치과 기공을 배우세요,   -plumber나 electrician 자격증을 따서 일하는 방법도… 수입이 짭짤합니다.   -저도 13살 때 왔고 벌써 29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지금은 작은 식당 두 개 하고 있어요. 2018년도까지 일식 쪽 GM, Director, 셰프 다 했어요. 몸을 쓰는 직업은 밥은 굶지 않지만 몸이 힘들어요. 식당은 주말이 거의 없습니다. 저도 어릴 때 한국 친구들과 어울려서 영어 완벽하진 못하지만 일할 때 지장 없을 정도만 하고, 아직도 한국어가 더 편해요. 님 같은 경우에 28살이란 나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나이에요, 보통 남자들 30대에 들어서면서 많은 고민을 하지만 막상 살아보면 30대가 가장 바빠요. 열심히 일할 나이라는 거죠. 결혼도 해야 하는데 모은 돈도 빠듯하고. 남 밑에서 일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그 어떤 직업이라도, 한 2년 남짓 지나면 그 정상이 어떨지 보이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직업을 선택하게 되고. 요즘 제 친구 놈은 한국 나가서 대기업에 잘 다니고, 차장까지 달았지만, 그 또한 걱정이 많더라고요.   -저는 28살에 학생으로 미국에 와 영주권을 받은 후 32살에 군대에 조인했어요. 조인 후에는 장교 쪽으로 선택해 이제 2년 정도 후에 은퇴를 할까 생각 중이에요. 군대에서 대학원 과정도 지원해 줬고 베네핏은 아주 좋아요. 페이도 4명 가족 사는데 나쁘지 않고요. 은퇴 후에 할 수 있는 일도 많고요. 영어는 저보다 훨씬 잘하시라 생각합니다.   -28살 아주 좋은 나이네요. Federal, State, City jobs. 알아보세요. 보기보다 영어가 아주 퍼펙트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체국, 버스 운전 등 많은 혜택이 있을 겁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올 정도면 공무원 CBP는 어떠신지요? 전 지금 현역 CBP 공무원입니다. 유튜브에 정보를 검색 후 나중에 연락 주세요.   -저라면 한국 갈 것 같아요 한국 가서 생각 정리도 하시고 여행도 하면서 쉬시고요. 그러다 미국 생각나면 다시 미국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 나이 때 이런 고민들 많이 하죠.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항상 미래 최소 10년은 바라보고 계획을 세우시길 권고 드립니다. 미국은 자격증이 제일 좋습니다. 그리고 공무원직도 좋습니다. 저는 미 공무원으로 23년 일하고 은퇴했습니다. 주정부 공무원보다는 연방 공무원 쪽이 낫다고 봅니다. 자격증도 IT나 의료계 쪽으로 계획을 세우시면 4년 정도 투자하시면 최소 20년이 보장됩니다.   -저는 그쪽보다 더 늦은 중학교 3학년 졸업하고 홀로 미국에 왔는데 무조건 영화 보면서 대사를 따라 하고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저는 대학 중퇴이나 자랑 같지만 연봉은 남들이 엄청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청년 진로 진로 고민 주정부 공무원 한국 친구들

2022-05-12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어머니 날(Mother’s Day)

5월 8일은 어머니 날이다. 대부분의 국가는 어머니 날이 있으며, 미국은 5월 둘째 일요일로 정하였다. 그 유래를 찾아보니 1908년 필라델피아에 사는 어느 효녀가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는 마음으로 감리교회에서 흰 카네이션을 돌리면서 시작 되었는데, 국경일로 정해진 후 너무 상업적으로 번지자 오히려 이 효녀는 어머니 날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걸기도 했다. 원래 그녀는 어머니 날을 어머니와 가족 간의 개인적인 축하의 날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꽃집, 카드 가게 등이 이를 가만히 놔둘 리 없고 본질을 흐리게 하자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여간 그것은 백여 년 전 이야기이고 요즘 어머니 날에 아들 딸들이 꽃이나 선물을 안 하였다가는 그 해는 안면후치로 거시기 해질 것이다. 어머니의 은공에 대해 왈가왈부한다는 것 자체가 무식한 후레자식으로 어머니의 힘과 존재는 현대 사회에서 막강하다. 심지어 아버지도 그날은 같이 가세하여 꽃이라도 바쳐야지 구경만 하고 있다가는 무사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날은 어머니가 신이다.     그러나 요즘 이상하게 그 문전 성시였던 카드 가게는 줄줄이 문을 닫고 꽃 가게도 그리 신통치가 않다. 효심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극성인데, 인터넷 시대로 선물은 아마존 택배로, 카드는 이메일로 뒤바뀌어 그전에 우편으로라도 손에 카드를 쥐어본 어머니로서는 뭔가 서운하고, 선물은 택배 차가 문 앞에 던지듯 놓고 가 만족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리고 멀리서 자식들이 화상 통화랍시고 전화를 걸어오니 점점 뭔가 우주에서 유영을 하는 기분이다.   어머니는 남성 사회에서 그리 오래 대접을 못 받아 왔는데 여성이라기보다 생명을 직접 창조하고 남성으로부터 구박을 받아 가면서도 자식을 어렵게 키워오신 분으로 어머니라는 존재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 담겨 있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엄마” “맘마”로 부르는 이 단어는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어머니라는 단어다. 어머니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아기가 자기 스스로 만든 첫 언어다.     이 달에 어머니의 생일까지 겹친 우리 아이들에게는 아주 바쁜 달이다. 게다가 6월 셋째 주 아버지의 날이 또 있어 봄맞이 할 정신은 그리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다. 아버지 날이라고 어머니 날과 똑같이 안 하면 그건 인종 차별을 넘어선 성적 부모 차별이다. 손자가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있는 딸년 집은 친정, 시댁까지 합쳐 그날은 아수라장이다.     그런데 그날 사회에서 부모를 위해 소비된 비용을 보니 어머니 날은 240억 달러, 아버지 날은 170억 달러로 편차가 심하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좀 더 분발하여야 하지 않나 생각된다. 금년은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많이 올랐으나 상관없는 일이다. 나도 이날은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나 시를 하나 지어 봤다.     高松里 :     먼 산 하나 / 산 상투리 잡고 / 좌우로 늘어진 능선 마루 / 비단 물결이 아래로 내려 쏟는 / 그 소나무 떼 흐드러진 끝자락 / 하나의 종소리 있어라 / 할아버지 예배당 세우고 / 아버지 매단 종 / 덩그렁 소리 있어라 / 쭉 뻗은 뙤약볕이 / 고요한 벼 벌판을 흔들고 / 사잇길 아래 / 아해들 맑음 소리가 / 논두렁이 흐흐 / 냇버들 하하하 끝이 끝이 없어라 / 아버지 냇물 바위 딛고 / 학교 가고 오고 / 할아버지 그 바위 너설 추스르며 / 아해들 그냥 하하 웃어라 / 아해들 망태 그물 그득그득 하여라 / 할아버지 아버지 허허 탈탈 / 이제는 큰 소나무 속 누워 사시고 / 아랫고술 뾰족 지붕 / 아직도 세월에 / 아직도 햇살에 / 그냥 반짝이기만 하여라 / 그냥 허허 / 눈허리가 저 밀기가 하여라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어머니 mother 요즘 어머니 할아버지 예배당 할머니 할아버지

2022-05-05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신 대공황

‘화폐 전쟁’(Currency War)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같은 제목으로 오래 전 세사람이 각각 다른 내용으로 집필했다. 존 쿨리((John Cooley)는 위조지폐의 해악에 대하여 썼으며, 쑹훙빙(宋鴻兵)은 월가에서 금융인으로 근무하다 중국으로 귀화한 중국인으로 소수의 금융 재벌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논조로 영국의 로스차일드의 가문과 유대인 음모론의 확장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읽기에 박진감이 넘치며 서스펜스도 있어 당시 중국과 한국에서 100만권이 넘는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랐는데 총 5권으로 된 방대한 내용 중 끝부분에서 헤지펀드들이 동남아를 휩쓸어 국가 부도로 몰아갈 때, 한국에서 금 모으기가 일어 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국인의 끈질긴 모습에 전 세계 금융인들이 놀랐다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제임스 리카즈(James Rickards)가 작년에 발간한 “신 대공황”이 요즘 주목을 많이 받고 있다. 리카즈는 변호사이자 금융인 등으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데 오래 전부터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였다. 그의 논조는 다음과 같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당선되기 직전 1929년은 주식시장의 대폭락으로 오랫동안 경제난을 겪었는데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데는 25년의 세월이 걸렸다. 물론 하락만 계속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성장도 있었으나 추세선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공황의 개념을 위해 지난 650년 동안 10만 명 이상이 사망한 팬데믹 현상을 미국의 학자들이 조사하였다. 지금까지 15번의 팬데믹이 있었다. 그 중 최악은 1억 명이 사망한 1918년 스페인 독감이며 2위는 14세기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7500만 명이 사망했다. 지금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는 693만 명으로 3위에 있으며 또한 계속 진행 중이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분산 투자를 권하는데 주식을 30가지로 분산하라는 것이 아니고, 주식, 현금, 부동산, 사모펀드 등인데 지금 같은 인플레이션에는 금과 원자재가 잘 된다는 것이다. 추천할 것은 현금을 자산의 30%로 갖고 있어야 하며 그 이유는 그때 그때 선택적 가치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금을 자산의 10%로 갖고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지금의 현상은 30년을 예상한다.   현재의 인플레이션 상항에 대해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 4차 산업 혁명의 버블은 2015년에 형성되어 1차 버블이 계속 진행 중이다. 2차 버블이 터지면 과거 닷컴 버블과 같이 몰락한다. 나스닥 특히 테슬라를 비롯해 다수가 엄청나게 하락하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살아남는 기업만이 재정비해 부활한다. 현재는 역대 버블의 최고로 쌓인 시점이다. 연준은 항상 죽일 기업은 죽여 털어낸다. 그래야 기업은 스스로 구조조정을 하고 경비 절감을 한다. 실물 시장이 무너지며 몇 년을 가면서 이렇게 버블이 해소돼야 다시 경제가 올라간다   그러나 코로나19가 덮친 2020년은 연준은 그렇게 할 수 없어, 정크 폰드까지 전부 다 사주었다. 연준은 2020년에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2021년부터는 버블이 폭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였는데 앞으로 3년간은 계속될 것이며 연준의 긴축도 빨라질 것이다. 다음 차례는 버블이 계속 부풀어지다 터지는 순간이데 그 방아쇠는 지금 계속 올릴 예정인 기준 금리 후반기일 것이다. 대폭락이 온다면 다우는 40%, 나스닥은 70%, 암호 화폐는 90%, 부동산 시장은 30% 각각 하락할 것이다. 그래서 우량주를 갖고 있으라는 것이며 그 후 2~3년간은 상승을 할 것이다. 오늘은 으스스 한 이야기뿐이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대공황 세계 금융인들 역대 버블 부동산 시장

2022-04-28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20세기 초 미국은 수많은 과학 기술과 새로운 제도가 생겨나 풍요를 누리면서 모든 주식은 끝없이 상승하였다. 그러나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한 사람이 느닷없이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자 수 많은 사람들은 불안에 휩싸였고 매도는 도미노처럼 일어났다. 수습이 불가능한 사태로 치달았다.     주식 시장의 붕괴는 경제 발전의 적신호다. 800개의 은행이 파산했고 900만개의 예금 통장이 사라졌다. 2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미국의 경제는 14만개 기업의 부도를 처리했고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 미국서 시작된 이 위기는 영국 독일 등 주요 유럽 국가들을 강타했고 세계는 경제 공황에 빠졌다.   이 때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이를 극복하리라 생각했지만 대공황은 계속됐고 국가는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말았다. 1700만명이 직업을 잃었고 200만명이 길거리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고 있었다. 1932년 민주당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희망”이라는 경선 구호로 제32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보여주는 동시에 국민들이 자신감을 잃지 않고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믿어 줄 것을 호소했다.     서방 국가들이 경제위기를 맞고 있을 때 새로 탄생한 소련의 국가 풍경은 황홀했다. 그들은 새로운 경제사회의 관리 방식을 창조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계획경제라고 불렀다. 1928년부터 1932년까지 서방의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는 몇년동안, 소련은 첫번째 5개년 건설계획을 실시한다.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발전했고 사회 전반에도 발전이 이루어졌다. 서방의 정치가들은 소련의 성공에 주목했다. 정부의 간섭이 적을수록 좋다고 생각했던 미국은 정치와 경제의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시기 많은 경제학자들은 자유주의 경제에 나타난 시장의 문제점을 발견한다.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스는 “정부는 보이는 손이 되어 경제에 관여하고 국가의 힘을 경제 정책에 이용해야 한다”며 프랭클린에게 편지를 써서 정부 지출을 증가시킬 것을 권했다. 그는 취임 즉시 경제에 대한 정부의 대규모 관여를 시작하였다. 긴급 은행법을 통해서 은행 질서를 정돈했고 긴급 구제법을 통해서 구조기관을 설립해 빈곤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을 돌보게 했다.   농업 조정법을 통해서 농산품 가격 회복을 도왔고 정부 산업 부흥법을 통해서 경제 복구에 자금을 투자했다. 1933년 테네시강 관리국이 설립됐다. 국가의 지도와 정부의 투자로 이 유역에 20개의 새로운 댐을 건설했고. 대량의 공공 건설 작업은 사람들에게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제공했다. 경제위기가 가져다준 사회 불안을 노동을 통해서 해소한 것이다.     미국은 새로운 정치 기간에 노후 대비와 실업 분야 같은 사회보장 체계를 구축했다. 대통령이 추징한 사회 혁명과도 같았다. 프랭클린은 국민들에게 가난을 피할 자유가 있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빈곤에서 벗어 나는 일이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정부는 국민들에게 빈곤을 막아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즉, 유명한 “빈곤으로부터의 해방론“이다.   1936년 미국의 경제는 회복하고 있었으며,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새로운 정치는 시장 경제의 새로운 발전 방식을 창조했다. 시장에 보이지 않는 손과 정부의 보이는 손이 힘을 합쳐 경제를 자극했으며 시장 역할과 정부 역할을 동시에 발전시켰다. 그는 대통령 4선을 지낸 후 세상을 떠났다. 전쟁 직후 미국의 산업 생산량은 전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했고 달러를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체제를 구축했다. 20세기 후반 미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국이 등장한 것이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roosevelt 프랭클린 민주당 프랭클린 경제학자 케인스 경제 발전

2022-04-21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2명의 루즈벨트 대통령

미국에는 2명의 위대한 루즈벨트 대통령이 있는데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와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이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의 대기업들을 전부 해체하고 진보주의에 손을 들어 주어 유명했던 인물이라면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는 그만큼 고육지책을 택해서라도 양극화 현상을 없애 경제를 다시 살려내고 미국에 공산주의 내지 사회주의가 뿌리 내리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1901년부터 재선에 당선될 만큼 인기가 많았던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다.   또 한 분의 유명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4번이나 대통령에 당선 되었던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다. 시어도어와 프랭클린 대통령은 네덜란드계 미국인으로 작은 아버지와 조카 사이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정치 성향이 서로 달랐다. 그럼에도 미국 역사에 걸친 두 번의 최대 경제 공황을 이 두 대통령은 슬기롭게 잘 넘기었다. 두 대통령의 업적은 오늘날 세계 각국, 특히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아주 크다.   한국이 과거 IMF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과감한 구조조정과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본보기로 그 어려운 고비를 넘겼듯,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정책도 한국에서는 이제부터 검토를 하여야 할 단계에 왔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대기업은 이에 대한 연구를 더욱 함으로써 꾸준히 체질 개선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즘 양극화 현상이 점점 심화된다는 여론이 비등할 때 미리 스스로 정화하지 않으면 한국도 언젠가 현재의 물러터진 공정거래법을 넘어선 강력한 반 트러스트법으로 기업을 강제 분할하는 법이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사실 한국은 대기업이라는 수준을 넘어 온 가족과 친척이 앉아 대물림 하는 문어발식 ‘재벌’(Chebul)이라는 것이 더욱 문제다. 세계에 유례 없는 재벌가 기업은 아무리 일류 대학을 나온 수재라도 재벌 기업에서 일을 해봤자 그 집안 사돈의 팔촌만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 ‘금수저’ 문제는 사회적 갈등이 점점 뿌리 내려 가는 징조다. 거기에다 수 많은 공공 기업까지 천문학적인 만성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도 모두 부러워하는 신의 직장으로 둔갑하여 공공 부문까지 국민으로부터 지탄을 받는 지경까지 왔다.   더욱이 이를 제재하여야 할 정부의 세대도 베이비 붐으로 태어나 재벌체제에 만성이 되어 무감각해진 것이 더욱 문제다. 언론 역시 광고에 무너져 기레기라는 소리마저 들어도 태연할 뿐이다.   수구 꼴통이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처음에 그 자신이 대기업을 해체한다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였고 록펠러나 카네기 또한 국가에 부를 계속 가져다주는데 왜 자신들이 당해야만 하는지 도무지 이해를 못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경제를 위해서는 대승적인 차원과 함께 사회적 갈등이 해소 되어야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은 그 동안 진보 정부가 지향하였던 낮은 단계의 통일에 더욱 시달릴 것이다. 이번에 정말 간발의 차이로 들어선 윤석열 정부에서 재벌이 미국처럼 전문화가 아닌 문어발 체제가 계속 진행된다면 공산화 논의는 끝없이 계속 진행 될 것이며, 점점 국민의 성화에 결국은 남북 합작의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미국도 감당하기 힘든 북한의 ICBM 성공으로 한국은 그야 말로 자기네 진짜 주체 경제 사상을 세우지 못한다면 북한의 주체 사상에 먹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금전 만능 사상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정부는 철저히 배워야 할 것이다. 앞으로 다룰 다음의 두 이야기는 중국의 ‘대륙굴기’를 일부 참조하였다. (hanhongki45@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루즈벨트 대통령 루즈벨트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 프랭클린 루즈벨트

2022-04-07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루이지아나

루이지아나 주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생경한 역사다. 미시시피강 서쪽으로 17세기경 지금의 다코다 주와 오클라호마 주를 비롯한 12개 주의 땅을 통합한, 현존 미국의 30%에 해당하는 큰 땅이었으며 과거 프랑스 영토였기 때문이다. 아마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전쟁에 몰입하지만 않았다면 지금의 미국은 프랑스가 지배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루이지아나라는 이름은 당시 프랑스 국왕이던 루이 14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초기 프랑스와 스페인 정착자들의 문화는 아직도 남부 루이지아나 중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의 많은 주민들은 프랑스어와 영어를 공용어로 다 사용한다. 그 큰 땅덩어리는 나폴레옹에 의해 1803년 미국에 1,500만 불에 싸게 팔리면서 당시 미국 땅덩어리가 갑자기 2배로 확대되는 행운을 맞았다. 그 큰 루이지아나 땅은 후에 여러 개의 주로 분할되어 현재의 루이지아나 주 모양, 남쪽 미시시피강 하구에 작은 장화 모양으로 축소되었다.   당시 북아메리카 대륙 서쪽은 주인 없는 땅으로 어느 나라가 먼저 건너가 땅에 금을 그어 나가느냐에 따라 국경이 정해졌다. 객쩍은 이야기 같지만 아마 당시에 한국도 비록 선조시대였지만 국력이 있었다면 배를 타고 건너갔으면 지금쯤 어느 비옥한 한구석은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야 한국인들도 이민이건 출장이건 지구를 누벼 손안에 공깃돌 돌리듯 하지만, 어느 지구에 있는 국가보다 사방이 막힌 작은 나라라서 그런지 유감 없이 탈출하듯 이제는 세계 어느 시골구석이라도 한국 식당 없는 곳이 없다. 한국인은 뉴올리안스와 그 주위에 약 2,500명이 살고 있으며 물론 교회와 식당이 들어선지 오래다.   가톨릭과 기독교 사순절 전에 주로 2월 뉴올리안스에서 벌어지는 ‘마디 그라’(Mardi Gras) 축제는 이곳을 대표하는 관광상품으로까지 자리를 잡았다. ‘마디 그라’ 축제는 오래 전 중세 유럽에서 시작된 문화였는데 이곳으로 전래되었다. 뉴올리안스는 낭만이 있는 도시다. 브라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삼바 축제가 있다면 뉴올리안스는 ‘마디 그라’ 한 달 동안 매일 진행하는 재즈 축제가 유명하다. 옛날 프랑스식 건물이 있는 거리는 모든 골목이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는다. 특히 중심지 Bourbon Street는 자유를 방관해도 좋을 정도의 넉넉한 마음을 가진 거리이며, 특히 200년 전 여자가 모여 살던 2층 베란다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비드(Bead) 구슬 목걸이를 던지면 지나가던 객들이 서로 손을 내밀며 붙잡으려는 재미가 한낮의 햇살을 더욱 밝게 한다. 거리도 그렇지만 골목 안의 생활도 그 옛날 그대로다. 특히 재즈 춤을 즐기는 젊음은 이들이 거리의 악사와 넘쳐나 온종일 음악이 넘쳐난다. 한마디로 내일은 또 무슨 즐거운 일이 일어날까 흥분하며 잠을 자는 도시다.   뉴올리안스는 또한 음식으로 유명하다. 미국에서 한국의 전라도 음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미국 전역에 뉴올리안스 음식점이 있으며 독특한 미시시피강 하구의 남부 전통 음식을 대표한다. 요리 스타일 두 가지는 크리올(Creole)과 케이준(Cajun)이다. 유명한 음식에는 검보 수프(Gumbo Soup)와 잠발라야(Jambalaya), 크로 피시(Crawfish, 보통 가재와 만든 진하고 매운 수프)와 에투 이프(Etouffee, 밥에 얹은 해산물 스튜)가 있다. 프랑스 마켓 도넛으로도 알려진 비녜트(Beignet)는 기름에 듬뿍 넣고 튀겨 가루 설탕을 묻힌 작은 네모난 페이스트리이다. 그 중 검보는 한국의 육개장을 빼어 닮았으며, 잠발라야는 누런 긴 쌀에 소시지 혹은 새우를 넣은 볶음밥이기는 하나 향료가 섞인 약간 매운맛이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루이지아나 남부 루이지아나 옛날 프랑스식 미시시피강 서쪽

2022-03-31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40대 중반의 위기

인생은 길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길어질 전망이다. 마치 인생은 자연 이치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작위에 의해 사는 모습이 되었다. 섭생의 모습도 달라졌다.   약 80년 전 원자 핵으로 2차대전이 끝난 후 문명은 핵 세계화되면서 꼭 파괴뿐이 아닌 문명의 이기라는 양면을 거치며 획기적인 과학의 발전을 거듭하였다. 그리고 급속한 물질문명은 자연 파괴라는 악순환을 동반하면서 지구 환경에 피해를 주며 드디어 4차 산업 혁명이라는 전대미문의 혼란한 가상의 세계와 결속하는 시대로까지 진입하였다. 지구가 몸살을 앓으면 그 속의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다 같이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인류는 새로운 질병을 맞았으며 또 한 번 황폐한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러나 인간의 기본 정신세계는 창세기부터 변할 수가 없다. 행동의 변화는 있을지언정 두뇌 속까지의 변화는 제약돼 왔다. 수학적으로 잘 발전한 머리라도 인간의 기본 정서는 논리적인 것을 거부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기본은 동물적 정신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   요즈음 사람들의 정신세계는 황폐화 되어가고 있다. 해 맑은 원시성 정신이 어려서부터 극한 입시 경쟁이라는 무지막지한 폭력에 시달리면서 사회생활로 진입한 무한 경쟁은 중증을 일으켜 소위 자아를 상실하게 만든다.   현대 사회의 삶은 보기에 아주 간단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사회로 나갔다 집에 돌아와 잠자면 그만이다. 매일 반복하는 일인데 좋게 말해서 사회적 동물이라 칭할 뿐이다. 어느 동물이 출근하기 위해 새벽부터 비장한 모습인가. 특히 큰 회사일수록 짊어지고 갈 정신의 무게는 비례적으로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동물의 기본적인 식욕과 색욕을 넘어 물욕과 정신 욕까지 다 추구한다. 풀리지 않는 자기 세계에 빠지는 자가 당착을 갖고 있다. 인간 정신이 단순한 동물 정신과 다른 맹점이다.   현대적 인간은 학교에서 배우고 한창 나이에 사회로 들어간다. 사회는 너무 다양한데 처음에 적응하기가 힘들다. 사회 적응 정신력을 알려 주는 데는 없고 각자 터득을 하여야 한다. 학교에서 ‘정신학’을 강의하는 데는 없다. 그만큼 정신학을 경시하기 때문이다. 정신은 의학적인 치료 학문이 아니라 요즘 죽음의 학이 부각하듯 새로운 시각의 건강 분야의 필수 학문이다.   미국의 학교에서는 유례없는 정신병자의 총기가 난무한다. 사람이 어려울 때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체력이 아니라 정신력이다. 결국 육체를 지배하는 건 잘 정리된 정신이다. 꼭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수능 시험이나 SAT에서만 필요할 중요 과목이 아니라 현대인에게는 어려서부터 갖춰야 할 올바른 학문의 세계다.   인생에 가장 힘든 나이는 40대 중반이다. 이삼십대 경험의 축적이 40대에 폭발하기 시작해 중반에는 세상을 다 잡아먹을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며 그만큼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한다. 밑에서 올라오고 위에서 내려 미는 그 중간에 치여 세상만사 다 때려치우고 싶은 머리가 터지는 시기다. 실제 40대 중반에 인생의 심각한 변화를 겪기도 한다.     현대 사회는 자비가 없다. 결국 남은 인생을 홀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하는 겪어 보지 못한 정신적 외로운 나이다.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얼마나 다른지 노년이 되어서야 알 수 있다. 정신력의 분수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정신력은 의지의 산물이다. 화산이 꼭 폭발하여만 화산이 아니다. 활화산으로 만년을 가기도 하고, 휴화산으로 안정기에 들어가기도 한다. 화산에 숲이 들어서고 새가 우는 낙원이 들어 서면 더욱 보기 좋다. 산은 무심치 않다. 정신은 한편으로는 가슴에 마음으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담담한 마음일 뿐이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중반 위기 동물적 정신세계 기본 정신세계 동물 정신

2022-03-24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St. Patrick’s Day

어제(3월 17일)는 ‘성 패트릭’의 날이다. 이날이 금년도에 더욱 중요한 것은 지난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시 전체가 죽어지내다 이날을 기해 숨을 쉬기 시작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2년간 이 행사는 중단되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와 인플레이션 문제로 아직 미국 살림살이가 소강상태이기는 하나 그래도 공식적으로 마스크를 벗을 수 있고 특히 시카고의 추운 겨울은 이날부터 봄의 문턱으로 들어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시카고 강 전체가 밝은 녹색으로 물감이 들어지며 주변의 가로수 꽃망울이 움트기 시작하면 시민들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거리의 퍼레이드는 일찍이 지난 주말에 시작했으며 Irish Whiskey는 벌써 동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매년 시카고 강의 LaSelle Bridge를 건널 때마다 강물을 어떻게 저렇게 쉽게 금방 영롱한 녹색으로 바꿀 수 있나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은 오래 전 시카고 배관공 노조의 특수한 비법 때문이었는데, 그 배관공들은 강 주변 건물의 배관을 통한 물을 측정하는 친환경 비법을 연구하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 ‘성 패트릭’의 날이 되면 노조가 독점적으로 보트 3대로 삽시간에 강물 전체를 물들인다.   아침 10시부터 시작하는 이 물들이는 장면을 구경하기 위하여 온 시민은 잠을 설렌다. 도심을 관통하는 이 아담한 강물을 물들이는 장면은 시카고의 유일한 명물이다. 뉴욕과 보스턴을 비롯한 대부분의 미국 도시들은 거리 축제로 유명하다.   원래 ‘성 패트릭’의 날은 아일랜드가 1600년 자국에 최초로 가톨릭을 선교한 성직자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지금은 본국보다 미국이 더 명절로 즐긴다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19세기 중반 농작물인 감자병으로 7년 연속 대기근을 맞아 800만 인구의 절반이 죽고, 백만 명의 인구가 난민선을 타고 북미와 호주로 건너 갔는데, 그나마 30만 명은 배 안에서 병사했다. 속칭 ‘관선’(棺船: Coffin Boat)으로 배가 아니라 떠있는 커다란 수많은 관이었다. 인접한 영국은 오랫동안 식량 착취를 하였음에도 이를 보고도 못 본 척하여 두 나라는 아직도 서로 감정이 좋지 않다. 초기에 미국에 건너온 이들은 백인 대접을 못 받아 상호 보호 차원의 갱(Gang) 단을 조직하여 그런대로 사업이 자리 잡았으나, 후에 도착한 이태리 마피아와 뒤섞여 영화 속 인상은 별로였지만 그들은 후에 완전히 하나로 뭉쳐 성공을 하였다.   녹색은 아일랜드의 상징으로 맥주까지 초록으로 바꿔 가며 지난 주말부터 이번 주는 만사 제쳐 놓고 죽어라 하고 퍼마신다. 뼈에 사무친 대기근을 조상님과 함께 풀어 나가는 좋은 방법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90년대 중반부터 이 축제를 전 세계에 본격적으로 마케팅하여 성공했다. 이제는 어느덧 많은 국가들이 자기네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빌딩을 녹색으로 바꾸는데 심지어 상하이와 동경은 물론 이집트는 피라미드를, 두바이는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 할리파’까지 이날 초록 조명으로 분칠하여 준다.   아일랜드에는 당시 굶주린 좀비들이 거리를 헤매는 동상이 아직도 중심부에 있으며, 미국 워싱턴에도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 당시의 대기근 때 굶주린 노숙자들이 급식소 앞에 줄 서 있는 동상이 있다. 한국도 과거 강남 말죽거리인 테헤란로에 ‘재봉틀 앞에 앉아 있는 여공들’의 동상이 한 블록은 차지했으면 하는 생각이 난다.     그들은 한국인과 일면 비슷한 점도 있는데, 지독한 압박을 오래 받아와 그런지 술 소비량은 세계에서 쌍벽을 이룬다. 다른 점이라면 헤어질 때 한쪽은 싸움으로 영원히 찢어진다는 것이다. 아일랜드계로 유명한 미국 대통령은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patrick day 시카고 배관공 아일랜드 정부 시카고 강의

2022-03-17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 3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주라.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가르치라. 땅은 우리 어머니라고.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땅에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 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가지는 우리 모두의 신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은 땅을 소유하고 싶어 하듯 신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신은 인간의 신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홍인에게나 백인에게나 똑 같은 것이다.     이 땅은 신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그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 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은 이 땅에 보내 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홍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준 신에 의해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 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電話線)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덤불이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마지막 홍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가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이 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 태어난 아이가 어머니의 심장 고동을 사랑하듯이 그들이 이 땅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땅을 팔더라도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달라. 우리가 돌본 것처럼 이 땅을 돌보아 달라. 당신들이 이 땅을 차지하게 될 때 이 땅의 기억을 지금처럼 마음속에 간직해 달라. 온 힘을 다해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대들의 아이들을 위해 이 땅을 지키고 사랑해 달라. 신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우리가 이 대지의 일부이듯 그대들 역시 대지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 대지는 그대와 우리 모두에게 귀중한 것이다. 한가지만은 우리는 알고 있다 : 신의 존재가 하나이듯 인간에게도 홍인이든 백인이든 서로 나뉘어 질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한 형제임을 알게 되리라.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연설문 시애틀 추장 조랑말과 사냥 쓰레기 더미

2022-03-10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 - 2

우리가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추인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목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 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 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 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 다르다. 그대들의 도시의 모습은 홍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홍인이 미개하고 무지하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도시의 소음은 귀를 모독하는 것만 같다. 쏙독새의 외로운 울음소리나 한밤중에 연못가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면 삶에는 무엇이 남겠는가? 나는 홍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음으로 공기는 홍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 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는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靈氣)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 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이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고려해 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 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내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소중한 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 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게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혀져 있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계속)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연설문 시애틀 추장 짐승들 나무들 우리 아버지

2022-03-03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추장 연설문 - 1

미국의 1830년대는 인디안으로 인한 생존 문제로 그들과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없는 날이 거의 없었다. 대표적인 것이 영미전쟁 당시 가장 용맹을 떨쳐 백인들의 간담을 서늘케한 일리노이 주의 소크(Sauk)와 폭스(Fox)족 연합 추장인 블랙호크(Black Hawks)와의 전투, 그리고 조지아 주의 비옥한 땅을 차지하고 있던 체로키(Cherokee)족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척박한 스모키 마운틴으로 쫓아내는 전투다.     당시 남북 아메리카를 통 털어 최대 5천만명의 인디안들이 살았다는 설이 있으며 대부분 북 아메리카에 상주하고 있었다. 그 중 서부 지역에 있는 스쿼미시(Squamish)족의 시애틀 추장은 전설적인 인물로 특히 워싱톤 주에서는 7학년 교과서에도 게재될 만큼 유명하다. 전투에 용감한 인물이라기 보다는 그의 연설이 오늘날 현대인에게도 가슴 뭉클한 울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 추장은 1855년 당시 프랭클린 피어스 대통령으로부터 그 지역의 200만 에이커 땅을 15만달러에 판매하라는 제의를 받았는데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명연설을 하였다. 이를 들은 피어스 대통령은 그 지역을 추장의 이름을 따서 ‘시애틀’이라고 명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의 연설문을 놓고 진위를 가리는 논쟁이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으며 그래서인지 연설문 버전도 길고 짧은 것, 그리고 내용도 각각 조금씩 다른 것 등 여러가지가 있다.     여기서는 그 중간쯤 되는 것을 골라 한국에도 이미 알려지기 시작한 내용을 마지막 부분에 다른 것과 짜집기 해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미국 유학을 생각하는 유학생들에게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연설문을 영어로 암송할 수 있다면 아마 어려운 대학의 면접도 통과가 확실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참고로 시애틀이 도시로 환생하였듯, 블랙호크는 시카고의 아이스하키팀과 군사용 헬리콥터로, 그리고 체로키는 크라이슬러의 Jeep차로 환생하였다. 그러나 산골짜기를 울리며 전쟁을 알리는(War Dance) 그 용맹스러운 북소리는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이다.   다음은 연설문이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대들에게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 홍인(紅人)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들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바로 우리 홍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의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 온 것은 곧 우리의 거의 모든 것을 달라는 것과 같다. 대추장은 우리만 따로 편히 살 수 있도록 한 장소를 마련해 주겠다고 한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계속)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시애틀 연설문 시애틀 추장 연설문 버전 피어스 대통령

2022-02-24

[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추장(3)

매년 6월이면 기념관 측은 일반인을 상대로 일년에 단 한번 산에 올라 일부 완공된 추장 얼굴을 가까이 볼 수 있는 걷기 대회를 주최하는데, 최근에는 1만5,000명까지 늘어났다. 수 많은 장비는 회사들로부터 기증된다. 그러나 조각에 들어가는 노임비는 방문객 입장료로 충당되는데,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는다. 방문객 센터 단지의 특징은 산에서 발파된 커다란 바위들을 다듬어 만들었는데, 방문객은 이 돌들을 약간의 기부금을 내고 가져가기도 한다.   2006년에는 전국적인 기금 모집이 시작되었는데 목표 액수는 1650만달러이다. 첫번째 계획은 기념 사업장에서 일할 40명의 미국인 인디안의 숙소 비용을 짓는 140만달러가 목표였다. 요즘도 발파 행사는 주기적으로 있으며 이때에는 전국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인다. 그 사람들이 발파 시간에 맞춰 동시에 같이 카운트 다운하면 수많은 바위가 굴러 떨어지고 먼지가 자욱해지는데 그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수 많은 군중들이 이 돌들을 하나씩 집고 아낌없이 헌금을 하는 데에 있다.   그러나 이 기념 사업에 부정적인 견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크레이지 호스 추장은 평소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였고, 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는 곳에 묻혔다.     지올코브스키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크레이지 호스 추장의 정신을 나타내는 은유적인 상징물로 이 조각상을 상상해낸 것이다. 크레이지 호스는 필경 “내가 묻힐 저 곳이 나의 땅이다”라고 말하였을 것이고, 조각상은 그 의미를 크게 부각시켜서 조각하게 된 것이다.   당초 라코타의 추장 “서있는 곰 헨리”의 동기는 순수했지만, 많은 라코타 족들과 원주민들은 이 조각상에 반대를 하였다. 라코타 족으로 배우이자 정치, 사회에 영향력을 가졌던 러셀 민스(Russell Means)는 “크리스쳔이건, 유대인이건, 무슬림이건 이스라엘의 신성한 땅에 가서 기념한다고 시온 산을 조각한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이것은 우리 자체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일 뿐이다”고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라코타의 주술사였던 램 디어(Lame Deer)는 1972년 자서전에서 “결국 아름다운 산에 대한 환경적 공해일 뿐, 크레이지 추장의 정신과는 위배된다”고 일갈했다.    많은 아메리칸 원주민들 역시 조각상이 가리키는 지점 역시 역사적인 것과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비영어권 지역에서 서로 다른 언어 소통으로 인한 문화 차이를 연구하는 노던 애리조나 대학의 바바라 제인 칼리슬(Barbara Jane Carlisle)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멕시코에서 턱을 가리키는 것은 아메리카 인디안에게는 입술을 가리키는 것과 같다”. 즉, 지올코브스키가 처음부터 너무 과대하게 생각한 게 아니냐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도전은 인간의 정신을 능력으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데는 그 한계성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위 진정한 “무한 도전”인 셈이다 (hanprise@gmail.com)   한홍기한홍기의 시카고 에세이 크레이지 호스 크레이지 추장 크레이지 호스 추장 얼굴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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